지역 종합병원들, “의사 없으니 AI라도 쓰게해달라”
지역 종합병원들, “의사 없으니 AI라도 쓰게해달라”
보건복지부 각종 지원 사업 인력 기준 '현실성 제로' 지적
“의사 대신하는 혁신기술 도입해도 인력 기준 미달시 탈락”
대한종합병원협회, “AI시대에 맞게 인력 등 규제완화해야”

지방 의료의 최전방을 지키는 지역 거점 종합병원들이 정부의 경직된 인력 기준과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에 가로막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수억 원의 연봉을 제시해도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지방의 특수성을 고려해, 인공지능(AI) 등 혁신 기술 도입을 인력 기준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인력난에 막힌 ‘지역 의료 회생’…“지원금은 그림의 떡”
부산에서 지역 거점 병원을 운영하는 A 원장은 최근 광역단체의 지역 의료 지원 사업 공고를 보다 한숨을 내쉬며 서류를 덮었다. 응급의료 체계 강화를 위한 시책 사업이었으나, ‘외과전문의 1명 상주’라는 신청 자격부터 맞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20일 만난 A 원장은 “연봉 수억 원을 제시해도 의사를 못 구해 빈자리가 허다한데, 인력 기준을 들이대며 지원을 받으라는 건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현재 복지부가 시행하는 각종 지정제와 지원 사업은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의와 경력 간호사 확보를 필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인해 지방 병원들은 의료진을 구하지 못해 폐업을 고민하는 판국이며, 이는 결국 지역 간 의료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 “AI가 의사 보조하면 인력 기준으로 인정해야”
지역 의료계가 내놓는 현실적인 대안은 ‘기술을 통한 인력 대체 및 보완’이다. 의사의 업무 부하를 줄여주는 AI 진단 보조 시스템이나 24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한 스마트 병동 시스템을 구축할 경우, 이를 인력 충원의 일부로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실제 사례로 전남의 한 병원은 판독 전문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흉부 엑스레이 AI 판독 솔루션을 도입했다. AI를 통해 의사의 업무 효율이 30% 이상 향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거점병원 평가 기준에는 ‘AI 도입 여부’가 아닌 오로지 ‘전문의 머릿수’만 포함되어 가산점을 받지 못했다는 거다.
■ “디지털 의료 전환, 규제 샌드박스 도입 시급”
전문가들은 지방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의료 인력 중심’의 평가 체계에서 ‘환자 안전 및 치료 결과 중심’의 평가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이 추진하는 ‘항생제 적정사용 관리(ASP) 시범사업’의 경우, ‘주 40시간 전담 의사 확보’라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이 지역 병원들에게는 거대한 ‘족쇄’가 되고 있다. 필수 진료과 의사조차 부족해 당직을 서는 지역 현실에서 특정 사업에만 매몰되는 전담 의사를 고정 배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대한종합병원협회 관계자는 “의료 인력 수급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지역에 한해서라도 AI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을 인력 기준으로 인정해주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종합병원협회는 조만간 지역 거점종합병원들을 상대로 여론을 수렴해 의료인력 기준의 각종 지원사업에 대한 규제 개선대책을 수립해 복지부 등에 건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가 없어 문을 닫는 지역 병원들에게 ‘의사를 데려오면 도와주겠다’는 정비 지원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지역 의료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 AI와 같은 혁신 기술을 인력난의 ‘구원투수’로 인정하고 경직된 인력 기준을 완화하는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지역 의료계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