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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생전 마지막 커트머리를 너무 좋아했어요!”

병원 미용봉사에 환자-보호자, “아픔 잊고 가장 행복한 시간

15년째 온병원에서 환자 이미용봉사 하는 부산진구 미용사들

매주 서너번 순번대로 참여, 말기암환자는 병상서 컷·염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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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으로 호스피스완화병동에 입원 중인 60A씨는 간병인의 부축을 받고 병실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화이트헤어가운 커트보를 두르고 앉아있는 A씨는 마치 결혼식장에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신부 같다. 앞에 비치는 A씨의 얼굴엔 가벼운 흥분이 느껴진다. 40대 젊은 미용사는 능숙한 가위질로 A씨의 머리카락을 정교하게 잘라 나간다. 머리카락이 잘려 나갈 때마다 병약해 보이던 A씨의 얼굴이 환해지고, 완연하던 병색에 생기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환자분, 앞에 걸린 거울 보세요. 너무너무 예쁘고 아름다우세요. 나중에 가족들이 오시면 딴 사람인줄 알고 몰라보시겠어요.”

젊은 미용사가 돌이킬 수 없는 암 투병에 지친 A씨에게 따뜻한 말을 건넨다. A씨는 미용사의 말에 끌려 눈앞의 대형 거울에 나타난 자신의 얼굴을 찬찬히 훑듯이 살핀다. 눈에는 모처럼 생기가 감돈다. 메마른 입술도 발그스레해지고, 멍한 눈동자 속에 그렁그렁한 물기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A씨의 마음도 가벼운 흥분에 살아있음을 격렬하게 경험한다. 이게 몇 년 만인가, 하고 머릿속으로 셈을 헤아려는 것조차 까마득하다. 살아서 마지막으로 하는 머리손질이지만, 암 진단 초기의 분노와 부정에서 분노와 원망협상과 타협우울과 절망을 거쳐 수용과 적응에 이른 듯 평안해 보인다. 거울에 시선을 박고 있는 말기암환자를 지그시 바라보는 젊은 미용사의 눈엔 촉촉이 젖어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딸이 미용사에게 고마움을 담아 말을 건넨다.

암 말기인 어머니께 마지막 효도로 머리를 예쁘게 단장해 드리고 싶었는데, 밖으로 모시고 나가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잖아요. 한데 미용봉사단 단원들이 직접 호스피스 병실로 찾아 오셔서 침상에서 컷을 해주시니 어머니 얼굴도 밝아지시고, 제 마음도 큰 짐을 하나 덜어낸 듯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병원은 물론 미용 봉사자분들께 너무 감사해요.”

부산 부산진구 온병원(병원장 김동헌·전 부산대병원 병원장)에는 매주 화, , 목요일 병동미용실 온뷰티살롱이 차려진다. 지난 20238월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써 어느덧 3년째다. 2010년 온병원 개원 초부터 2020년 코로나팬데믹 이전까지 박승철헤어스투디오의 미용사들이 지속적으로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미용 봉사를 해왔다.

그러던 중 2023년 온병원이 증축공사를 마무리하면서 확보된 병원 13층에 20여 평의 별도 공간에 미용실 온뷰티살롱을 상설 마련하여 부산진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실력 있는 미용사 60여명이 매주 세 차례 머리 컷에서부터 염색까지 서비스하고 있어 입원환자들로부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매월 150200명이 꾸준히 이용 중이며, 병동 내 온뷰티살롱 오픈한 이후 8월 현재까지 4,200여명에게 이미용 서비스를 베풀어주고 있다.

온병원의 온뷰티살롱에서 정기적으로 자원 봉사하는 미용사들은 모두 60여명. 요일을 달리하며 미용봉사를 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엔 부산진구미용사회(원명자 회장) 임원들로 구성된 50여명의 한마음봉사단(김영학 부회장)에서 45명씩, 2회 참여해 사랑의 가위손으로 환자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매달 3주차 수요일 오전엔 박승철헤어스튜디오에서 환자 이미용봉사를 하고 있다. 박승철헤어스튜디오는 지난 20103월 온병원 개원 직후부터 이미용 봉사를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 2주차 수요일에는 부산진구미용사회 서보교 실장과 동료들이 요양병원 환자들이나 3개월 이상 장기입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머리카락 염색까지 해 드리고 있다.

환자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뜻하지 않는 사고로 큰 수술을 받고 병상에서 누워 지내면서 열흘이 지나도록 머리를 감지 못해 스트레스까지 겪고 있던 환자는 편안하게 머리카락도 잘라주고, 머리까지 감겨줘서 너무 좋았고, 병원에서 짧게 있는 동안 커다란 행복을 누리는 시간이었다며 봉사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모처럼 노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병원 이미용 봉사에 동참하고 있는 미용사들은 힘들다기보다는 되레 아픈 환자들의 웃음에서 격려를 받고 돌아간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병원 이미용 봉사에 동참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부산의 한 방송국 코디실장으로 재직 중이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미용학과 김민정 교수는 동생과 딸을 데리고 지난 2020년부터 매월 격주로 온병원을 방문하여 호스피스 환자 대상으로 침상 미용봉사를 해오고 있다.

김 교수는 이미용 기술을 통해 직장이 아닌 병원에서 봉사를 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는 것에 보람되고 감사하다면서 엄마의 봉사 모습을 지켜보던 딸도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이 온병원 이미용 봉사에 동행하자고 졸라서 함께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께서 평소 깔끔하시고 외모에도 신경을 쓰시는 멋쟁이여서 웬만하면 머리 커트를 안 하시려 하셨는데, 젊은 미용사들이 워낙 솜씨 좋아 커트가 맘에 들었다며 즐거워하던 어머니의 표정이 아직도 눈앞에 선선합니다.” 며칠 전 호스피스완화병동에서 돌아가신 말기암환자의 딸이 장례식 이후 병원에 찾아와 병원관계자와 미용사들에게 전한 감사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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