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선교사·온재단, “절망 속 코피노 희망 피워내”
국내선교사·온재단, “절망 속 코피노 희망 피워내”
부산 온병원, 턱 부위 거대 종양으로 고통받던 코피노 소녀 수술
필리핀 앙헬레스 슬럼가서 온몸으로 시련 견뎌낸 13세 마리아 양
온그룹사회공헌재단·선교사·후원자 손잡고 2천여만 원 수술비 지원
3만~5만 명 코피노 아이들 복지 사각지대, 종교·의료계 희망 빛춰

머나먼 이국땅 필리핀의 빈민가에서 아픔을 견뎌내던 10대 코피노 소녀가 국내 의료진과 온정의 손길 덕분에 새로운 삶을 선물 받았다. 국경과 제도의 한계를 뛰어넘어 아픔을 보듬은 따뜻한 연대가 차가운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부산 온병원은 최근 성형센터 김석권 센터장(전 동아대병원 성형외과교수)의 집도로 필리핀 국적의 토라도 마리아 클라우디아(TORRADO MARIA CLAUDIA·13) 양의 ‘좌측 턱 연부조직 양성 종양 절제술 및 국소피판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8일 밝혔다.
마리아 양은 필리핀 앙헬레스의 한 슬럼가에서 남편 없이 홀로 네 자녀를 키우는 35세 어머니의 첫째 딸이다. 동생 세 명 역시 아버지가 서로 다른 코피노 형제들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어머니가 공장 직장을 구하며 억척스럽게 삶을 지탱해 나가던 중 마리아 양에게 청천벽력 같은 시련이 닥쳤다.
지난 2024년경 마리아 양의 좌측 턱 부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종괴(mass)가 발생한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현지 병원은 지난해 4월 종양 제거 수술을 시행했으나, 약 1년 6개월이 지난 최근 종양이 다시 자라나며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재발의 아픔을 겪었다. 급기야 재수술을 위해 찾은 현지 병원에서는 “더 큰 병원으로 가라”며 사실상 치료를 포기 권유해 가족을 깊은 절망에 빠뜨렸다.
현재 필리핀 현지에는 한국인 아버지의 연락 두절과 양육 포기 속에 홀로 남겨진 코피노 아동이 최대 3만∼5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양국 정부 차원의 공식 전수조사나 체계적인 지원 제도가 여전히 미비한 탓에, 이들 상당수는 빈민가와 복지 사각지대에서 의료 혜택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방치되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이처럼 어둠 속에 갇힌 모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국경을 초월한 민간의 사랑이었다. 김세정 선교사·임영문 목사(부산 평화교회 담임목사) 등 기독교인과와 이수광씨 등 후원자들이 발 벗고 나서 마리아 양의 안타까운 사연을 국내에 전파했고, 마침내 온병원 성형외과 명의인 김석권 전문의와의 기적적인 연결로 이어졌다.
한국 땅을 밟은 마리아 양은 지난 10월 1일 온병원 성형외과 외래를 찾아 정밀 진료를 받은 후 VIP병동인 11병동에 입원했다. 곧바로 시행된 안면 MRI(조영증강) 검사 결과, 농양을 동반한 치성 피부 누공 및 좌측 턱 피부의 양성 종양이라는 최종 진단이 내려졌다.
이어 지난 10월 2일 오후, 성형센터 김석권 교수의 숙련된 집도 하에 종양 조직을 말끔히 도려내고 피부 결손 부위를 안전하게 메우는 ‘좌측 턱 연부조직 양성 종양 절제술 및 국소피판술’이 시행됐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며, 마리아 양은 현재 안정을 되찾아 주말인 10일 퇴원할 예정이다.
마리아는 “지난 1년 반 동안 좌측 볼이 튀어나온 상태여서 걱정도 많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좋은 후원자와 좋은 의사 선생님, 좋은 병원을 만나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며 온병원 의료진에게 감사인사를 건넸다. 병상 곁에서 딸을 지키고 있는 엄마(35)도 타갈로그어로, “일면식도 없는 딸의 수술을 위해 망설임 없이 도움을 주신 선교사 등 기독교인들과 온병원 관계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며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이번 수술이 성사되기까지는 약 2천여만 원에 달하는 적지 않은 치료비가 큰 산이었다. 제도적 지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코피노 아동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온그룹사회공헌재단(이사장 정근)에서 흔쾌히 수술비의 3분의 2를 전액 부담하기로 뜻을 모았다. 여기에 뜻있는 선교사와 국내 후원자들이 나머지 3분의 1의 비용을 힘을 모아 지원하면서, 경제적 장벽을 완전히 허물고 아이에게 희망의 날개를 달아줄 수 있었다. 선교사 등 국내 기독교인들은 마리아의 항공료와 체재비 일체도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도의 공백과 빈곤의 장벽 속에서 고통받던 코피노 소녀의 아픔은, 온정 어린 의료진과 종교계, 재단, 그리고 후원자들의 헌신적인 손길을 만나 비로소 찬란한 희망으로 피어났다. 마리아 양이 되찾은 환한 미소는 국경을 넘어 세상이 함께 품어야 할 진정한 인류애와 온기의 증거가 되고 있다.
